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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


01

 2017년 가을부터 2018년 초반 겨울까지. 나의 신상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10년 넘는 간극을 지나 생애 두 번째 사랑을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두 번째 이별을 했다는 것. 그리고 하나는 허리와 무릎을 수술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치게 되었다. 마음이 무너져버리니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고,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겐 좋은 일이라곤 없는 듯 했으며, 나라는 인간은 말 그대로 서서히 망가져 갔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마음에 대해서는 서술하기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으니, 몸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허리와 무릎이 수술로 인해 약해졌고 언제 또 상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잊기 위해 억지로 이런저런 운동을 무리해서 하였더니 기어코 탈이 나고 말아서 족저근막염이라는 희대의 쓰레기 같은 병을 추가로 얻었고, 이로 인해 한동안 운동을 접으면서 그에 기안한 스트레스를 떨치기 위해 폭음 폭식이라는 나태한 삶을 살아왔다. 어느덧 나는 10 킬로그램이 넘는 체중 증가를 목도하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든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 자주 아팠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 그 긴 공백의 시간 동안 사랑하지 않았던 주제에 한참 늦은 나이에 뒤늦게 누군갈 만나 아낌없이 마음을 주었고, 그런 나의 마음은 표현과 행동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제대로 상대에게 가 닿질 않았다. 이렇게 늦게 이렇게 서툴게 할 거였으면 사랑하지 말 걸 그랬다. 그런 생각을 자주하며 지난 1년을 통과 해왔다.


 사실은 나라는 인간은 그런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털고 일어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웅덩이 같은 후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나 자신도 용납하기가 어렵다. 그저 나태하고 게을러 보일 뿐이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 대해선 이제 잊기로 하자. 얼마나 많은 밤과 낮을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으로 지내왔던가. 행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끝을 내자.


 쉽지 않다. 수 없이 각오를 해보고 스스로를 설득시켜 보았으나, 조금 지나면 다시 마음은 저편 슬픔이라는 언덕에 기대곤 하였다. 스스로 헤쳐나가기 힘들어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마음의 창을 열고 바람을 쐬어왔지만 결국 제자리였다. 그렇다면 이젠 더 이상 출구라곤 없는 것인가?


 일상을 무리해서라도 바꾸어 보자. 혹은 예전의 삶의 패턴을 다시 찾아가보자. 매주 해야할 사소한 일들을 계획하고 조금씩 집중하여,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도록 하자. 새해의 벽두에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서 매주 해야할/하고 싶은 일들을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약을 챙겨 먹을 것

-책을 읽을 것

-다큐를 볼 것

-영어 공부를 할 것

-cert 공부를 할 것

-운동을 할 것

-업무 트렌드를 읽을 것

-일반 트렌드를 읽을 것

-음악을 들을 것

-영화를 볼 것

-미술을 볼 것


 그리고 월별로 처리해야 할 안건들을 정해보았다.


-1월 : 연말정산 / 실손보험가입 / 몰딩 및 문 페인트칠

-2월 : 감량시작

-3월 : 수영강습 / 연애

-......

-12월 : 결혼


 허황된 계획 혹은 계획이라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항목들이 많지만, 이런 계획이라도 세워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되는 계획이라도 일단 만들어 두기로 한다. 마음을 회복하기가 힘들다면, 바쁘게 움직여보기라도 하자. 그런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어보기로 한다.


 한 주를 시작하며, RHCP 의 힛트송들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출처 : Red Hot Chilli Peppers Greatest Hits ( https://www.youtube.com/watch?v=NthLvAUJvDU )


02

 도서실에서 대여한 책을 읽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청춘독설과 곽재식의 모살기. 병렬독서의 일환으로 일단 두 권을 빌리긴 했는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잠깐 책을 읽거나, 퇴근 후 집에서 잠들기 전 몇 페이지를 넘기는 것 외엔 본격적으로 읽을 만한 여유가 없다. 중간에 반납 기간이 임박해서 한 번은 대출 연장을 하기도 했는데 역시 녹록치 않다. 변명 따윈 접고, 아무래도 의지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청춘독설의 경우 이제 반을 겨우 읽어낸 와중인데, 철학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 왜 철학서를, 그것도 쇼펜하우어를 읽고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좀 더 알려진 칸트나 플라톤 등을 읽을 수도 있었겠지만, 예전에 한 친구가 쇼펜하우어에 관한 리뷰를 올린 것을 보고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벌써 10년이나 이전의 일이지만... 그 당시 친구의 리뷰에 지배적으로 깔린 정서는, 쇼펜하우어는 굉장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인물이라는 것인데, 직접 읽어보니 기본적으로 쇼펜하우어는 굉장히 금욕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라는 점은 나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아직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 전체를 파악하진 못하겠으나, 흥미로운 부분들이 제법 있어서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그 중, 책의 초입에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어서 남겨 보기로 한다.

...절망은 우리에게 죽음을 보여준 적이 없다. 끈을 둥글게 말아 목에 걸라고 등을 떠민 적도, 낭떠러지에 올라 뛰어내리라고 가르친 적도 없다. 절망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분별 있는 인간, 그래서 상처받은 인간의 침실을 정중하게 노크했을 뿐이다. 다만 지레 겁먹은 우리들이 절망을 죽음과 혼동하여 좌절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03

 오픽 고등급 취득을 목표로 영어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중급 취득 후 고급 과정을 회사에서 수강해보기도 했으나, 당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서 밤마다 방황을 했었고 그러다가 얼굴에 부상을 입고서부턴 고급 과정-이른 아침 수업이었다-에 참석을 하지 않게 되었고 이 후 영어공부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 때 두 달간 수강을 했던 수강생 중 끝까지 수강을 해낸 3명은 결국 고등급을 취득했다는 후기를 들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의 나로썬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이번 해에는 영어가 여러 모로 필요한 상황이라 고등급 취득을 목표로 개인적인 공부와 더불어 집 근처의 영어회화 학원을 수강하려고 한다. 비싼 돈을 치루어야 그나마 돈 아까운줄 알고 제대로 공부를 할 거라는 생각이다. 어쨌건 이번 주는 딱히 영어공부를 하진 못했지만, 업무 인계를 위해 국내로 출장을 온 외국 인력과 잠깐 미팅을 가질 시간이 있었고, 몇 가지 안건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현재의 내 영어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공부. 그런 와중에 인터넷에서 제법 유명한 문장이 있어서 알아보았다. 스타크래프트의 제라툴이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한 대사라고 하는데, 영문보다는 한글번역으로 꽤 유명한 문장이고,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관용구처럼 사용되고 있는 문장이었다. 영문이 꽤나 마음에 들어 외우게 되었다.

I have pierced the veil of the future and beheld only oblivion.

나는 장막을 들추고 미래를 엿보았지만, 거기엔 오직 망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pierce 라는 verb 가 상황에 따라 무엇을 관통하여 그 뒷편에 있는 것을 직시한다 라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behold 라는 단어의 실제 사용 예를 처음 보았다.


04

 하울, 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이번 주에도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게 되었다.

-휴대폰 차량 거치대

-휴대용 USB 면도기

-기계식 키보드 청축

-기계식 키보드 저소음 적축

운전할 때 차량에 설치된 내비게이션 말고 티맵을 주로 사용하는 편인데, 데크 왼쪽의 에어컨 송풍구에 거치시켜놓고 운전하다보니, 핸들에 가려져서 일부 화면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작은 거치대를 하나 더 구해서 대시보드 위에 부착시켜서 사용해보았으나 지난 여름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한 번 떨어진 이후부턴 잘 붙지 않는 문제가 있었고, 차량 앞 유리에 부착시키기엔 각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대시보드 돌출 부분에 끼우는 거치대를 하나 구해서 차량에 붙여보았는데 운전 중 시야각 내에 쏙 들어와서 편리해보였다. 아직 거치대를 장착하고서 운전을 해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편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항상 가는 미용실의 미용사 분이 가끔 눈썹을 정리해줄 때 사용하던 충전식 면도기가 탐이 나서, 나도 하나 구매해 볼 요량으로 인터넷 구매를 해보았다. 칼날이 튀어나온게 아니라, 진동식 칼날의 외부에 한꺼풀의 보호망이 있고, 그 보호망의 작은 구멍들 사이로 털을 넣어야만 면도가 되는 방식인데, 생각보다 잔털들-눈썹, 턱 부분의 털-은 잘 면도가 되지 않는다. 좀 더 사용해봐야 알 수 있을듯 하다.

 회사 IT 구매 사이트에 포인트가 좀 남아서 소진할 요량으로, 집에서 쓸 키보드를 알아보았는데 마침 회사에서 출시한 기계식 키보드가 있어서 덜컥 구매를 하였다. 기계식 키보드는 처음이었는데 청축 스위치를 탑재한 키보드를 사서 몇 번 사용하다보니 타자기 같은 그 강렬한 타건감에 매료되어 몇 일째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일부 키가 매핑이 바껴있어서 환불하려했으나, 게이밍 모드에 의한 현상으로 확인되어 환불을 취소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집에서 좋은 키보드를 사용하다보니, 사무실에서도 좋은 키보드를 쓰면 업무 효율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용산 리더스키에 가서 사무실용 키보드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모델을 살펴보았다. 처음엔 소리가 잘 안나고 타건시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덜 간다는 무접점 키보드를 고려했으나, 실제 고가에 해당하는 브랜드의 무접점 키보드와 그보다 낮은 가격대의 기계식 키보드 저소음 적축을 번갈아 비교해가며 사용해본 결과, 기계식 키보드 저소음 적축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한 시간의 장고 끝에 레오폴드 fc750r 을 구매하게 되었다. 내일부터 사무실에서 사용할 생각을 하니, 우습게도 벌써부터 업무효율이 10% 는 올라간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바이다.


05

 이번 주는 weekly plan 의 도입주 이다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바가 많았으나, 다음 주부터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나가기로 한다. 과거에 사로잡혀 많은 후회와 슬픔 속에 살아온 2018년 이었지만, 2019년은 어찌되었든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되어보려고 한다. 사람은 조금씩 나아지는 존재이다. 머물러 있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 그 기저에 항상 선함을 유지하고 살아가자.


좋아하는 만화에서 작고 어린 주인공이 한 말이 생각난다.

추억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란 정말 덧없고...

사소한 일로도 흩어져버리지. 그래도 나는 생각해...

내가 참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지켜낸 거라고.


정말 힘들 때는, 가끔 누군가의 아이같은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이완되곤 했지만, 이젠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기로 하자.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