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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타국에서 겪는 소통의 어려움에서 비롯되는 외로움, 고독함 그리고 불편함.

심지어 고국의 가족과도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아서 밥은 결과적으로 어디 한 곳 기댈 곳이 없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만난 샬럿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샬럿도 남편의 부재중 고독함을 느끼는 동시에 졸업 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존재.

밥과 샬럿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든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준다.

경험과 마음을 나누다가 이성 간의 미묘한 끌림도 느끼게 된다.

밥은 여느 때 처럼 밤의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중 비슷한 연배의 여가수가 말을 걸어와 같이 술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깨어났을 때 본인이 실수했음을 알아차리고, 이 때 방문한 샬럿에게 상황을 들키면서 난처하게 된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밥이 느낀 좌절감과 자신에의 절망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란 될 수 있으면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하지만, 술이라던지 분위기 같은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의식보다 욕망의 영역이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할 때 실수를 왕왕 저지르곤 하는 것 같다. 비슷한 경험을 누구나 해봤으리라 생각하고, 그 때의 감정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유부남인 밥의 처세에 대해 단죄를 하기 전에, 그가 처했던 상황과 그 상황을 이기지 못했던 나약한 인간성에 먼저 공감과 측은지심을 느끼고, 그 다음 그의 실수를 꾸짖게 된다. 가능하면 그런 상황에까지 다다르지 않도록 사전에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밥에 대한 샬럿의 분노와 실망감, 그리고 본인에 대한 절망감과 그런 자신을 이해하기보단 실망만을 표출하는 샬럿에 대해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세를 취하는 밥. 하지만 조금 거리를 격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마주쳤을 땐 이미 그런 감정은 수그러들고 난 후다. 아마도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인정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에서의 굿나잇 키스가 그냥 키스가 되어버리는 씬에서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이후 본국으로 귀국하는 밥이 택시에서 내려 샬럿을 쫓아가 진짜 키스를 나누는 것은 아마도 우정과 연애감정 사이에서 흔들렸던 자신의 마음을 마저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마침표를 찍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밥 본인도 의도적이라기 보단 부지불식 간에 몸을 움직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결과적으론 세월을 격하여 두 번 감상한 영화인데, 볼 때마다 스칼렛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반하게 된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