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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오래 전에 구매하였으나 매번 첫 부분을 읽다가 의욕이 사라져서-수학의 정석 집합 파트 같달지-결국 책장에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와 [여행의 기술] 옆에 나란히 놓여서 작가 시리즈로 구경만 하던 책이다.

 나는 요즘 지하철로 출근하는 시간이 나의 주 독서 시간이랄 수 있는데, 만원 지하철일지라도 왠만하면 책을 펴들고 눈 앞에 바짝 붙여서 조금씩 읽는 편이다. 몇십분의 짧은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있는 독서량에 한계도 있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독서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터라 독서 속도가 좀처럼 일정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은 이번만큼은 꼭 완독을 해보자, 라는 공격적인 의지를 불태우며 읽어보았다. 말했듯, 안정적이지 못한 독서 환경과 스타일 탓에 최소 한 달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라비와 커스틴의 첫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 후의 어느 지점까지의 일상에 대해 서술하며 중간중간 작가가 직접 발화하기도 하는 형식인데, 전작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보았던 것 같다. 작가의 화법에는 논리와 철학 그리고 어느 정도 전지적 입장의 논조가 보인다. 평소에 느끼지만 좀처럼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말로 풀어내어 수긍을 이끌어 내는 부분이 인상 깊었고, 다만 외국의 언어로 쓰인 소설을 번역한 것이고 작가의 스타일이 원래 그런 것인지, 굉장히 긴 문장 안에서 온갖 단어와 수식들이 나열되어 있어 독해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잘 흘러가던 이들의 연애와 결혼이 어느 지점부터 불화와 불편을 겪더니, 마지막 부분에선 좀 서둘러 정리되고 끝나는 느낌을 받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지막 부분에서 깨달음을 얻는 부분이 제법 황홀하게-그리고 무척 급하게-전개되어서 인상적이기도 했다.

 내 집에서 미니멀리즘이 가장 실천되지 않는 곳이 책장이라서 이제는 책을 다 읽으면 쌓아두지 말고 내보내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은 다시 읽기에 힘이 좀 들 것 같아서 아마 다시 읽진 않을 것 같긴하지만, 일단 방출하지 않고 두려고 한다. 언젠가 쓰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