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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강천섬


불 같던 오전에 집안일을 해치우고 숨을 고르다가, 한풀 기세가 꺾인 오후 느지막히 수원을 출발하여 영동을 타고 여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여를 달려 도착한 강천섬은 하늘과 바로 맞닿아 있는듯 온몸에 뜨거운 공기를 쉴새없이 비비적거렸고 마치 진군하는 병사처럼 씩씩하게 걸음을 재촉하여 강천교 초입을 지났다. 강천섬에 들어서면서 풍경은 다양한 초록들로 일변하였고 오랜만에 나무와 풀냄새를 마음껏 들이키며 소로를 따라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아갔다. 성인남성의 걸음으로 십여분쯤 지났을 무렵 섬은 그 속살이라 할 수 있는 잔디광장을 내게 내어주었고 거긴 이미 일상을 잊으려 섬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았던 정돈된 모습의 풍경과는 좀 차이가 있었던건 사실이다. 제멋대로 자라나 복숭아뼈를 마구 스치는 잔디광장을 지나며 제법 벌레들에게 시달려야했고 생각보다 높은 인구밀도와 텐트 무리를 지나며 1박보단 가볍게 산책이나하며 힐링을 하다 돌아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딜가나 릴렉스체어와 타프 그리고 꼬순 밥짓는 내음이 가득했고, 잠시 섬 중앙께에 있는 단 하나뿐인 화장실을 들렀다가 이내 섬 가장자리 수변산책로로 빠져나갔다. 사정은 비슷하여 좋은 자리엔 이미 사람들이 의자에 편히 앉아 책을 보거나 풍경에 눈을 놓인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강에선 수상스키의 꽁무니에서 과감한 턴을 구사하는 스키어의 역동적인 고함이 울려퍼졌다. 대략 한시간의 시간동안 섬의 중앙과 남반구를 산책하며 쑥부쟁이와 이름모를 들풀들을 마음껏 즐기며 길을 더듬어 섬을 빠져나왔다. 도중 자전거동호회 어르신들의 요청으로 단체사진도 찍어주었다. 정작 내 사진을 찍어줄 이는 없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스크에 색안경까지 장착하고서 마음껏 여러가지 표정을 지어가며 혼자만의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서쪽 즈음에서 뉘엿거리며 해가 떠있는 어느 한 순간, 하늘과 섬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제멋대로 휘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상깊게 눈에 담으며 올 가을쯤 1박을 기약해본다. 왔던 길을 더듬어 조금은 졸린 기분 속에 복귀를 하였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의 더위 속에서 흘린 땀이 아직 등어리 어딘가 흔적을 남겨두고있는듯한 착각을 느낀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