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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칠보산

 

 긴 휴가가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막 지난 첫 번째 주 였던 지라,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가기가 꺼려졌다. 나름의 휴가 계획을 세웠고, 집안일과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광청종주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광청종주, 여기저기서 정보 수집을 해본 바 지금의 몸뚱아리와 정신력 만으론 힘들겠다고 생각하여 일단 체력을 끌어올릴 방법을 생각했다. 동네 뒷산과 여러 산책 코스 그리고 지난 번에 시도했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주차가 불가능해서 실패했던 칠보산을 다니면서 체력을 올려보고자 했다.

 동네 뒷산의 이름은 독침산. 한 때 뱀이 많아서 독침산이라 이름지어졌다고 하는데, 영통 도서관 쪽에서 시작하여 조금만 올라가면 큰 정자와 운동시설 들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 내려가면 영통역이 나오는 아주 간단한 코스였다. KF94 마스크를 끼고 올랐는데 오랜만에 신체활동을 해서인지 너무 힘들었고 방독면을 쓴 마냥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그 짧은 코스를 오르는 중에 호흡과 체력이 달려서 중간 벤치에 잠시 앉아서 헐떡이며 쉬어야만 했다. 그 순간 광청종주는 이번 휴가 계획에서 삭제해야만 했다. 물론 긴 시간을 들여 체력을 끌어올린 뒤에 언젠가 꼭 도전해야만 할 것이다.

 비오는 어느 날에는, 광교 호수 공원의 두 저수지 주위를 산책하려고 집을 나섰다. 조금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섰는데 때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시 귀가하여 우산을 챙긴 후, 광교 호수 공원을 포기하고 집 근처인 경희대 국제캠퍼스로 발길을 옮겼다. 비는 가볍지만 매우 끈끈하게 내렸고 젖은 길바닥에 자주 발을 끌며 걸었다. 경희대까지 가는 길이 너무 고되었다. 경희대 캠퍼스 어귀에서 허리와 다리 그리고 발의 통증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다. 진짜 갈 것인가. 목표는 경희대 천문대였고 거기까진 비내리는 길을 몇십분 더 걸어가야 했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이내 마음은 묵직하게 비에 젖었고 약간의 고독함과 절망감을 곰씹으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휴가가 반절 정도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더 미루게 된다면 아마도 칠보산을 가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계획한대로 사람이 뜸한 평일에 산을 가야했다. 솔직히 체력은 1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수원 시내의 산 중에서 가장 여유로운 산행으로 유명한 칠보산이기에 더 이상은 움츠리고 있을 수 없었다. 광청종주를 하지 못하는 이상 칠보산은 이번 휴가 내에 꼭 올라봐야했다. 현재의 체력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앞으로의 산행에 대비하여 산행의 맛이라도 봐야했다. 간편한 복장에 등산화를 꿰어신고 버스를 탔다. 시작은 칠보맷돌화장실이었다. 지난번엔 용화사 입구에 주차를 하려다가 빽빽한 차량들 때문에 실패를 했기에 이번엔 차 없이 시작을 했다. 2코스를 올라서 정상을 보고서 3코스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용화사를 지나 오르막과 계단을 걸어오르며 중간중간 좌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올랐다. 초반 코스가 생각보다 힘들었고 사람들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두 번 정도 마스크를 벗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보다 형편이 나았던, 대충 현재의 몸무게보다 이십 킬로 정도 덜 나갔던 시절에 광교산 형제봉을 올랐던 때와 비슷한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 땐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던 때였기에 신선한 산 공기라도 마음껏 마실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형편이 여의치 않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하며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2코스에서 3코스로 넘어가는 길에 전망대가 있었고 한 사내가 전망대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있었다. 별로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번엔 전망데크가 나왔다. 전망이 탁 트여 좋았기에 거기가 정상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진짜 정상이 나왔다. 정상임을 나타내는 비석이 있었고, 이미 도착한 몇 명의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며 앉아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3코스로 하산했다. 내려가면서 무릎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사내약국에서 구입한 무릎보호대 덕분에 그나마 충격이 덜 했던 것 같다. 앞으로 감량을 꾸준히 해야겠지만 당분간 무릎보호대를 필수로 착용하면서 산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코스의 출구로 내려오니 가정집들의 골목 어귀였고 길을 더듬어 내려와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쉬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조금쯤은 체력이 늘었을까 생각해보면 글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오랜만에 산행의 맛을 보았기에 앞으로의 산행 계획에 있어 작은 밑천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한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