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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오래전 어린아이였을 때, TV 에서 동명의 영화? 드라마? 를 방영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어떤 내용이었는지에 대한 감상은 없었고, 다만 제목에서 [난장이] 라는 특수한 단어를 보고 어느 정도 호기심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이 도서를 지금에서야 사서 읽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어릴 적 느꼈던 [난장이] 라는 단어에 느꼈던 그 호기심이 이 책을 손에 들게끔 했는지도 모르겠다.

 

#2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도 벌써 두 달째는 된 것 같은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조금씩 읽어나갔음에도 이상하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중간중간에 병렬독서의 일환으로 같이 읽어나간 다른 책들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참 뭐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굳이 표현해보자면 읽기에 불편한 내용들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손이 자주 가지 않는다고 해야할지?

 

#3

 소외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공통점과, 난장이네 가족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서 난장이 연작이라 부를 수가 있겠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발표된 소설들의 모음집이다.

 뫼비우스의 띠 / 1976

 칼날 / 1975

 우주 여행 / 197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1976

 육교 위에서 / 1977

 궤도 회전 / 1977

 기계 도시 / 1977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1977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 1977

 클라인씨의 병 / 1978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 1978

 에필로그 / 1978

 

#4

 대립적인 관계가 반복적으로 등장을 한다. 일반적인 사람과 난장이, 폭력을 쓰는 사람과 법을 지키는 사람, 부자와 가난뱅이, 사용자와 노동자 등의 대립적인 관계가 주를 이룬다. 주로 소외되고 핍박받는 처지의 편에서 서술되고 있지만,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용자 측의 한 인물에 의해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어서 시각의 전환을 할 수가 있다. 물론 그 시각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상위 계층의 편견으로 가득 찬 것이라서 작가의 의도는 누가 봐도 분명하게 느껴진다. 반대의 입장에서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부조리와 그 부조리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의 부질 없음. 말로 풀어내긴 어렵지만, 소설을 직접 읽어보면 작가의 단순명료하면서도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날카롭게 표현하는 문체와, 같은 이야기 내에서도 영화의 scene 이 짧고도 반복적으로 교체되는 것 마냥 이곳에서 저곳으로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전환되는 서술 주체의 전환에 대해 감탄을 느낄 수 있으리라. 한 때 인권운동에 대한 책들을 관심가지고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이 난장이 연작 소설에서 그러한 인권운동에 대한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소설로도 이렇게나 소외 계층의 현실에 대해 잘 서술할 수가 있구나.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