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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여름휴가

 

 2023 여름휴가는 태풍이라는 변수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강원도 양양과 춘천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양양 서프쉑을 1박 예약 해놓고 그 외엔 계획없이 일단 수원을 출발 했다. 평일 이었음에도 휴가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와 휴게소엔 차와 사람들이 많았다. 3시간 40분 남짓 차를 몰아 양양 동호해변 서프쉑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너무나 무더웠고 체크인까지는 좀 시간이 있어서 일단 차가운 맥주 한병을 청하여 테라스에 앉아 마셨다. 서프쉑에선 서핑강습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 날 육안으로 보기에 파도가 별로 없고 몸 컨디션도 서핑을 배우기엔 좋질 않아서-아무래도 허리와 무릎이 테이크오프 동작 때문에 무리가 갈 듯 싶었다-서핑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더운 햇볕 아래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다보니 살짝 취기가 올라왔는데 곧 후회하게 되었다. 동호해변 주변엔 맛집이라던가 사람들이 잘 모이는 곳이 없어서, 가장 유명한 서피비치까지 가려면 차량으로 이동하거나 도보로 1시간 남짓을 걸어야하는데 이미 취기가 돌아서 결국 서피비치와 주변 맛집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일단 예약한 방에 짐을 풀었다.

 

 

 스파가 딸린 방이었는데 통창을 통해 해변이 잘 보였다. 가져온 짐과 위스키를 셋팅하고 잠깐 쉬었다. 밤에 스파를 하면서 집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느긋하게 먹어볼 요량이었다. 조금 쉬었다가 일단 요기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주변엔 밥집이 조금 있긴 했으나 하필 휴무일이거나 아직 오픈 시간 전이라서, 오픈한 가게를 찾기 위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꽤 걸어가야만 했다.

 

 

 문 연 곳을 찾다보니 팔도대게횟집이라 곳이 있어 들어갔다. 혼자 비싼걸 먹을 처지는 안되어서 간단하게 특물회 한 그릇과 소주 한컵을 청하여 먹었다. 햇볕을 피한 것만도 좋았는데 시원한 물회를 먹다보니 휴가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주가 조금 남아서 공기밥을 청하여 밥까지 말아먹으며 마무리했다. 들큰한 기분으로 다시 숙소까지 복귀했다.

 

 

 스파에 뜨거운 물을 받고 글렌알라키를 한 잔 하며 휴가 첫날을 마무리했다. 반 정도 먹고서 제법 산소와 어울린 위스키는 처음 오픈했을 때보다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린 과일과 달콤한 뉘앙스를 느끼며 기분 좋은 취기를 느꼈다. 이날은 아마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으리라.

 

 

 다음날 아침 맑은 날씨를 확인하며 일어나 짐을 꾸리고 좋아하는 하와이안 셔츠를 꿰어 입고서 춘천 세계주류마켓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와인도 구경하고 새로 생겼다는 지하 와인 까브도 볼 참 이었다.

 

 

 다행히 춘천에 도착했을 땐 날씨가 화창했다. 세계주류마켓엔 예전에 왔을 때 잘 살펴보지 못했던 위스키 코너가 제법 크게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위스키와 평소 관심있던 와인들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테스타마타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리고 지하 까브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브에 있는 와인엔 안정화 중이니 눈으로 봐달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었는데, 판매가 되는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직원분들이 안계셔서 따로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냥 눈으로만 둘러 보기로 했다. 무통 로쉴드의 연도별 다양한 에티켓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부르고뉴 쪽은 잘 몰라서 눈으로만 흝으며 지나갔고, 오히려 미국 쪽으로 넘어가며 크룹브라더스나 오린스위프트, 오봉끌리마 쪽을 눈여겨 보았다. 빨레르모를 살까 생각했으나, 가격표에 붙은 빈티지와 에티켓에 명시된 빈티지가 서로 달라서 좀 애매한 느낌에 사지 못했다. 그 외에 꼬스데스뚜르넬이나 딸보 등을 고민하다가 그 마저도 망설여져서 결국 까브에선 아이쇼핑만 하고 지상으로 올라가서 소비뇽블랑과 IPA 맥주 그리고 동료가 부탁한 우드포드리저브 더블오키드와 내가 먹을 잭대니얼을 샀다.

 술을 박스에 넣고 차를 타려고보니, 밖에선 엄청난-말 그대로 엄청난-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박스를 들고 차 까지 갈 엄두조차 나질 않을 정도였는데,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박스를 껴안고 차를 향해 뛰었다. 차 내부도 후끈후끈했다. 짧은 거리를 뛰었으나 이미 옷은 홀딱 젖었고, 이제부터 춘천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1박을 하려던 계획은 폭우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게 되어 따로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곧장 수원으로 복귀했다. 비는 수원을 향하는 동안 쏟아부었다 그쳤다를 반복했는데, 덕분에 도로도 제법 막혀서 결국 4시간 넘게 길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여름휴가를 제대로 보내려면 날씨와 동선 그리고 일정을 잘 계획하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해보면 1박 2일 동안 많은 시간을 운전으로 소요했던 것 같다. 복귀 후 다음 날은 홍식이에 기름도 넣고 타이어 바람도 넣었다. 2023년 여름 휴가는 양양과 춘천 그리고 이후 서울 곳곳을 놀러 다니며 보내었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