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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군산 여행 첫째날

 

 금토 이틀을 군산 여행 다녀왔다.

 수원버스터미널에서 정안휴게소행 버스를 탔다. 정안휴게소까지 예상 1시간이었는데 날이 좋고 차가 그렇게 막히지 않았는데도 1시간 좀 넘게 걸렸다. 정안휴게소에서는 추천받은 공주밤빵을 조금 사서 먹어보았는데 겉이 소보루처럼 고소하고 속은 은은한 단 맛이 있어 맛있었다. 정안휴게소 고속버스 환승 정류소에서 군산행 버스를 갈아탔고 역시 1시간 정도 걸려서 군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날이 맑다못해 여름처럼 더웠는데 군산의 거리는 높은 빌딩이 많지 않고 대부분 1~3 층 정도의 낮은 높이여서 그런지 유난히 하늘이 머리 바로 위에 얹어있는 듯 했다.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해 정처없이 걸어보았다.

 

 

 사실상 첫번째 목적지라기 보단, 군산에 올 때 프리하게 일정을 짜지 않고 온 탓에 지린성에서 일단 고추짜장을 먹으면서 일정을 짜려고 했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금방 지린성을 찾았고 마침 자리가 있어서 테이블에 앉자마자 야심차게 고추짜장을 시켰는데 주류는 판매하고 있지 않아서 조금 시무룩해져서 스프라이트를 시켰다. 면과 짜장양념은 금방 서빙되었는데 고추가 진짜 너무 매워서 속이 아프고 땀이 주루룩 흘렀는데 (몸이 안좋은 건지) 다행히 맛은 좋았다. 고기에 밴 양념과 서걱거리는 양파 그리고 너무 굵지않은 면 등. 고추는 너무 매워서 좀 골라내고 먹었는데도 이미 내 속은 고추의 매운 맛에 점령당한 뒤였다. 다 먹고 길을 나설 때 쯤 이미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어서 다음번 계획은 거의 세우지도 못한 채 우선 은파 호수 공원 쪽으로 길을 나섰다. 은파호수공원 까지는 대로변을 따라 쭉 걸으면 되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행다니면 주로 그 지역의 거리를 걷는걸 가장 좋아해서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그러지 못한 위장 상태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너무 쨍쨍해서 선글라스를 챙겨오질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지만, 그것 말곤 너무 행복했던게 맑은 날씨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개나리봇짐을 맨 탓에 등어리는 소금 땀으로 젖어갔지만 개의치않고 걸었다. 은파호수공원 까지는 1시간 넘게 걸렸던 것 같은데 가는 동안 대로변 양쪽으로 펼쳐진 건물들은 병원 같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층빌딩이 없어서 기분이 사뭇 달랐다.

 

 

 은파호수공원은 호수 주변으로 나무 데크 혹은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몇 시간 정도 가볍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 날은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작업으로 인해 막힌 구간이 있어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 반댓쪽 방향으로 일단 걸어보았는데 날씨 탓도 있고 이미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허리와 무릎이 지친 탓도 있어서 갑자기 컨디션 저하가 찾아왔다. 몸 상태를 고려하여 슬슬 포기하려던 즈음에 빈타이 라는 카페가 보여서 좀비처럼 몸을 이끌고 들어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청했는데, 여기서 마신 커피 한잔 (+생수) 이 너무 좋아서 마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방문하리라 생각하며 잠시 앉아 여독을 풀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급하게 숙소를 공설시장 근처에 예약하고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 가는 길은 너무 힘들어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군산의 일부 노선은 버스 운행 시간에 텀이 길어서 (60분 ~ 120분) 장난 아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금방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예약한 곳은 도깨비 라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사장님이 친절하시고 시장 및 월명동 근처여서 좋았다. 여기에 짐을 풀고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있다가 저녁 쯤이 되어 슬슬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하며 피곤을 씻어낸 뒤 이번엔 월명동 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한낮의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저녁 나절은 금방 어두워져서 이젠 가을에 가까워지는가 싶었다. 월명동 거리는 구획이 잘 나뉘어져 있었고 역시나 대부분의 건물들은 높질 않아서 어딜 가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초원사진관을 한 번 볼까 싶어 찾아가보니 바로 앞에 한일옥이 있어서 우선 배를 좀 채워보자 싶어 들어갔다.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나도 자리를 하나 꿰차고 육회비빔밥과 소고기무웃국 그리고 소주 한 컵을 시켰다. 비빔밥이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무웃국은 주변에서 다 먹을 때쯤 여기저기서 리필을 외쳤는데 아마도 리필이 되나부다. 하나만 시킬 걸 싶다가 둘 다 맛을 보니 그래 두 개 시켜서 둘 다 먹어보길 잘했다 싶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고 배가 부를 때 쯤 수저를 놓고 나왔다. 전체적으로 담백하니 맛이 좋은 곳이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와서 월명동 거리를 좀 더 걷다가 bar 를 찾아보기로 했다.

 

 

 영화타운에 있는 해무, 라는 bar 였는데 바다 안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ㄴ자 다찌로 되어 있었고 ㄴ의 말미에 착석했다. 시작은 칵테일을 청했는데 집에서 텐션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먹던 발랄라이카가 생각나서 메뉴판을 찾아보니 그건 없었지만 기주가 다른 사이드카가 있어서 그걸 주문했다. 레미마르땡 기주에 코앵트루와 레몬주스 그리고 뭔지 모를 두어 가지 정도의 추가 첨가물이 있었는데 그건 파악하지 못했다. 보드카 대신 브랜디가 들어가서인지 좀 더 유순하고 혀에 감기는 맛이 좋았고 의외로 술 같은 느낌이 들어서 쭉쭉 들이키진 못했다.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볼 만하다 싶었다. 두번째 주문은 라프로익 10 을 주문했는데 40도 버전이었다. 내가 예전에 먹어본건 43도 였는데, 이번에 먹어본 40도는 내 입엔 딱히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았다. 내 기억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향긋하고 달콤하며 해초 느낌이 들었다. 세번째 주문은 로완스 크릭을 주문했다. 버번을 스템 글래스에 따라놓고 보고있자니 색감이 예쁘게 느껴졌다. 처음 먹어보았는데 탄닌처럼 볼 안쪽을 수축시키는 죔이 있었고 시럽의 달달함이 느껴졌다. 포 로지스와 비슷한 느낌이 있고 타격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달달한 잔향이 오래 느껴졌다. 취기가 살짝 올라오고 단골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올 때쯤 마무리를 하고 길을 나섰다.

 

 

 군산의 좋은 점은 거리 곳곳에 공공화장실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소피가 자주 마려운 나는 이만큼 감사함을 느낄 때가 없다. 근심을 해결한 후 숙소로 귀가하는 길에 이성당을 들러서 야채빵과 치즈페스츄리를 샀다. 빵 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 좋은 느낌이다. 숙소 도착해선 낮에 사두었던 맥주 한 캔과 빵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선유도와 장자도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