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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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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구매한 책이다. 첫번째 구매시엔 솔직히 끝까지 읽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의 기술] 은 첫 구매 후 완독을 하였고 나름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었지만, 비슷한 사유로 잃어버렸거나 혹은 도서 소장 수를 줄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나눔했었을 것이다. [여행의 기술] 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를 다시 완독하기 위해 이번에 같이 구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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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이], 매력적인 이름이다. chloe? 라고 쓸까? 비슷한 이름의 동명 영화-내용은 완전히 다르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하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나 이름이 예뻤다고 느꼈었다. 이 책의 화자는 남자이지만, 늘 [클로이]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물론 화자 자신의 얘기도 있지만, 주로 외적인 묘사는 [클로이]에 치중되어있고 화자 본인에 대해선 심적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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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복귀편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화자와 [클로이]는 수순에 의해 호감을 갖게되고 첫만남 이후 본격적으로 사귀게 된다. 화자의 서술에 의하면, [클로이]는 앞니가 살짝 벌어지고 끔찍한 색깔? 취향과 남 탓을 하기 보단 자기 비하(혹은 혐오?)... 등의 화자 주관적인 설명에 의해 점차 독자들에게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화자는? 화자 자신에 대한 얘기도 물론 있지만-건축가이고, 작가의 시점이 투사된 것으로 보이는 철학적인 견지 등-왠지 나는 화자를 알랭 드 보통과 완전 동일시하게 보면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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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일반적인 연인들이 그러하듯 호감을 가지고 시작하여 서로의 여러가지 면모를 알아가며 감탄하기도 하고 혹은 심하게 싸우기도 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화자의 직장 동료인 미국인 건축가에 의해 시발된 것으로 보이는 엉킨 관계가 형성되고 이후 의심과 의심을 덮기 위한 호들갑스런 선의 그리고 결국 어느 시점에서 빵, 하고 터져버린 사건과 [클로이]의 고백-물론 미국인 건축가와의 그릇된 관계-으로 둘은 연인 관계의 네거티브한 결말이라 볼 수 있는 헤어짐으로 관계가 종료된다. [클로이]는 왜 연인관계에 있어 배신이라고 볼 수 있는 바람을 저질렀는가? 여기엔 또 굉장히 복잡한 서사가 있다. [클로이]의 삶과 연애에 대한 태도와 화자의 그것에 대한 태도들이 서로 연애를 하는 동안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좀처럼 대립의 각이 좁혀지지 않는 부분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쌓이고 쌓였고, 눈 앞에 보이는 행복에 대한 두려움과 선천적? 유전적? 혹은 후천적 학습에 의해 내제된 각자의 트라우마 내지는 네거티브한 성향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그런 상태에서 [클로이]의 배신은 덧그려진 유화의 정점을 찍는 마지막 붓의 한 터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붓질이 [클로이]가 된 것이고, 화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 관계를 망친 것은 결국 쌍방의 과실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별 후의 화자의 심리상태 추이나 독자인 나 자신의 개인적 생각은, 역시나 [클로이]가 원망스럽고.. 좀 더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 그래 솔직히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면, 좀 더 이별을 앞당기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뒤로 미루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적어도 연애 중인 상태에서라면 이 정도 배려를 하였더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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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이별 후의 화자의 심리 상태 추이를 다룬 철학적 서술이 아니더라도, 연애 중인 상태에서도 화자는 [클로이]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랑중일 때 그리고 [클로이]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때... 도처에서 여러가지 철학적 태도를 갖다대면서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이별 후의 내용들은 솔직히 읽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초중반을 생각하면 적절한 철학 이야기들과 소설적 이야기들이 맞물려 재미를 자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밝은 날에 좀 더 좋은 상황에서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새벽이라는 시간과 만나면서 꽤나 무거운 마음에 일독을 끝낸 바이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