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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넷에서의 밤, 뒷뜰

 

잠자리에 들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문득,

가슴 한 켠에서 소소하게 올라오는 헛헛함에

박하향 담배를 챙겨들고 뒷뜰로 나갔다.

치익,하며 타오르는 불꽃에 담배를 사르고는

입에 물기 전에 잠깐 누군가의 이름을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담배를 물었다. 한 모금 빨고,

후욱하며 하늘을 향해 한숨같은 연기를 내뱉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의 모든 것들이

강하게 옛것을 그리워했다가,

왠지 모를 이질감에 몸서리치며 지금으로 돌아오고,

이어 앞과 뒤, 양 옆 그리고 모든 공간에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나를 탓하고 있는 듯했다.

숨을 곳 없는 뜰의 한 가운데서 나는 나를

꾸짖고 성토하는 아우성들에 둘러싸인 채

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그렇게.

사납게 빛나고 있는 별빛들과

마음내키는데로 높아도 졌다가 낮게 내려오기도하는

잿빛 하늘과

위협하듯 일렁이는 옆 집 뒷뜰 문간의 고고한 램프불.

내가 떠나온 그 곳에서는 지금쯤

그 사람이 살던 그 동네 어귀쯤에 남겨놓고 온

나의 기대와 슬픔과 어지러운 담배 꽁초들이

뼛가루보다도 고운 먼지가 되어 있겠다.

파자마 차림의 나를 울리기 위해서라고밖에 생각되지않는

차가운 바람이 분다.

담배가 빨리 타들어간다.

별로 높지 않은 하늘 한 모퉁이에서

생명 없는 무엇이 사선을 그리며 비행하고 있다.

비행기는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차가우며 몇 갠가의 빛을 밝히며 날아갈 뿐이다.

모든 생명 없는 것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비행기는 꿈을 꾸지 않는다, 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믿음이 곧 내 외로움의 증거이며

내가 모든 것과 그 사람을 내 안에서

내몰면서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비행기는 꿈을 꾸지 않는다.

담배가 다 타기까지의 시간은

꽤나 길다고 생각한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