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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02_소고

저물어가는 올해에의 소회

 

 베란다 바깥에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은 파랗다가도 금새 잿빛으로 무거워진다.

 겨울인듯 하다.

 어렸을 적부터 내 자신의 기준으로 겨울은 언제나 12/1/2 월이었으나, 나이가 먹고서부터 내 몸이 춥다고 느껴야만 비로소 아, 겨울이구나 생각한다. 겨울은 이미 마중나와있었고 다만 내가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나는 늘 그런 태도를 견지해오고 있다.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이 내게 유리하지 않으면 자꾸 딴 곳을 바라보며 이를 못본 척하려 군다. 겁을 집어먹은 어린 아이가 내 속에 늘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나에게 한없이 관대한 편이라, 언제까지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그렇게 못본 척 못들은 척 모르는 척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큰 사건이 벌어지거나 깨달음을 얻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확실히 다가온 겨울의 기세에 밀려, 나는 스리슬쩍 겨울에 대비를 하려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 이사온 집을 꾸미는 것과, 월동대책을 세우는 것을 말이다. 부피가 큰 가구들-침대, 거실장, 행거, 책장, 책상 등-은 이미 구입 및 배치를 완료하였고, 그 외 추가로 필요한 물품들의 구매에 대해 골똘히 생각중이다. 의자, 서랍장, 거울, 청소용 밀대걸레 그리고 그 외 작고 귀여운 것들. 아, 이제껏 혼자 살아온 8년 세월 동안 크게 와닿지 않았던 [생활]이란 단어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내 집을 꾸민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언가로 채운다는 뜻이고, 이는 현실적으로 많은 소비를 하게 한다. 돈, 돈, 엄청난 돈이 나가고 있다. [안빈낙도]의 자세를 지키고 싶은 나로썬 정말이지 힘든 기간이다. 하필 겨울에 이런 힘든 시간을 맞이하다보니 더더욱 주머니는 가난해지고 마음은 여려지는 것 같다. 어서 이 단계를 지나야 올 겨울에 대한 월동 대책도 세울 수 있을텐데. 하.

 작년 10월 구미에서 수원으로 회사와 생활터전이 바뀌었고, 올 한해는 업무 내용도 바뀌어 적응하기가 여러모로 힘들었다. 그리고 늦가을 이사와 맞물려 회사가 수원에서 서울로 다시 변경되었다. 서울로의 출퇴근의 신산함이란, 겪을수록 힘들어진다. 내 신변의 크고 잦은 변화들이 자꾸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겪은 지금,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이 연말의 시간에, 나는 향후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어쩌면 인생의 삼분지일을 통과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인생의 절반을 통과했을 수도 있다. 이제 중반부 내지는 후반부를 계획해야 할 때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구체적인 내용들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고 생각하고 또 구체화된 목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올 해가 지나기 전에 이 작업들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빨래가 내일이면 좋은 냄새를 간직한 채 부드럽게 말랐으면 한다. 아침부터 행복한 기분이 될 것 같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