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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없음

 

 보이는 풍경의 삼분의 이가 하늘인 그 강변에서(나는 웃었던 것 같다).

 

 대여섯 번 걸어야 한 번 받음직한 그의 전화번호가 아니더라도 그의 명함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정말로 바쁜 사람이지만, 물론 그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어찌된 심사인지 그를 꼭 이 곳으로 불러내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억지, 부당한 요구. 평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마음씨까지 좋은 그는 억지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순순히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강변을 따라 말을 달려왔다. 불러낸건 나인데,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근황을 얘기하고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수줍음을 느끼며 아직 덜자란 말의 갈기만 자꾸 손으로 빗어내었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그의 보이스를 들으며 나도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강변 위로 펼쳐진 광활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내 머릿속도 순수한 공허의 상태가 되어버려서 흔하디 흔한 인삿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고, 그런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럽고 불쌍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떨까 생각하면 정말 저 강변너머 강으로 말을 몰아 잠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만났던 그 강변과 그 위로 펼쳐진 그 하늘 그리고 그 만큼의 아련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 따위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강변에서 내가 웃었던 이유를.

 

 아무 것도 없는 하늘 아래 말을 달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웃는 일 뿐이었다.

 

<해가 뜨지 않는 세상> 中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