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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1Q84

 작년이었나 제작년이었나. 이창동 감독의 [버닝] 을 영화관에서 보고선, 원작 소설인 [헛간을 태우다] 를 보고 싶어서 단편소설집 [반딧불이] 를 읽었던 게 마지막으로 보았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이었다. 한참 마음이 혼란하던 시절이었기에 좀처럼 책을 볼 수 없었고 애써 보려고도 하질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 생각난듯 온라인 서점에서 몇 권씩 책을 사모으곤 했다. 책을 살 땐 당시의 트렌디한 경향을 쫓아 베스트셀러를 몇 권 장바구니에 담고, 이어 스테디셀러 내지는 명작 중에서 몇 권을 고른 후,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 중 여태 읽지 못한 것 들이나 최신작을 골라서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이 내 도서 쇼핑의 패턴이었다. 이른바 내 최애 작가 중 한 분이기에, 내 책장에 아직 자리잡지 못한 작품이 뭐가 있을까 둘러보았고, 장편소설 중에서 [1Q84] 를 아직 읽지 못했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했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여러 권 짜리 장편소설은 기존에도 읽었었고, [태엽 감는 새] 의 경우는 초기 소설군의 1인칭 화자 시점을 유지한채 장편소설에서도 그 시점을 유지한 바 있었고, [해변의 카프카] 는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서-1인칭 화자 시점의 주인공과 3인칭 시점의 노인-시점을 바꾸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임을 알고 있었다. [1Q84] 의 경우는, 2명의 주인공-이후 3명으로 바뀌기도 한다-이 모두 3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생생한 감각은 조금 떨어지지만, 대신 3인칭 시점에서 주인공과 주인공의 세계를 자유롭게 서술 가능하고 좀 더 객관적 설명이 가능하며, 작가의 역량에 따라 1인칭 시점 못지않은 몰입도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책을 읽어보고 내가 느끼기에, 초기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대부분의 소설 작품을 읽어본 바로는 앞서 설명한 시점에 따른 차이를 사실 크게 느끼기는 어려웠다.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던 두 주인공이, 어느 시점, 사건을 계기로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또다른 현실 세계에 자리하게 되고, 그러한 비현실적인 일들을 겪어내며 점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 간의 관계를 깨닫고 이런 세계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처리해나가는 써리얼리스틱한 이야기이다, 라고 생각한다. 써리얼리스틱하다는건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공기번데기/리틀피플/마더와 도터 같은 소재들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결국 또다른 현실 세계-리얼리스틱한-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발 끝에 채이는 써리얼리스틱한 소재들을 각자의 지혜를 짜내어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처리해나가야만 하는 지극히 리얼리스틱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기존의 작가의 단편소설 및 초단편소설 들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이야기 내에서 초현실적인 소재/상황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야기 그 자체만큼이나 크기에, 그러한 작품을 읽고나면 '야 이것 참 써리ㅡ얼리스틱하구만'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1Q84] 는 내겐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였고 읽는 내내 주인공에 독자-나- 자신을 투영시켜 매 순간 의사결정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이 선택한 결정과 내가 상상해본 나 스스로의 결정은 조금씩 어긋나긴 했지만.

 소재 자체도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도 지루할 틈 없이 덴고와 아오마메 그리고 우시카와 3인 사이를 적당히 왔다갔다 하며 읽는 내내 독자의 스탠스를 끊임없이 전환하게끔 하는 맛이 있어 1-3 권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재밌게 즐겨 읽은 작가의 장편소설이었다. 다 읽은 3 권을 책장에 꽂아 넣으며 보니, 책장 한 켠에 작가의 예전 작품들도 눈에 들어와 오랜만에 옛날에 쥐 4부작 이라던가를 새벽녘까지 읽어가며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라 스르르 미소짓고 말았다. 부모님보다 좀 더 많은 연배의 작가분이 건강하시고 또 재미있는 작품을 내어주시길 바래본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