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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나의 서양미술 순례

 

 

1

 2002년, 혹은 2003년 군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정도 내무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있던 시기였고, 일과 이후에는 무언가 읽을 거리가 없나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던 차에, 누군가가 꽂아둔 이 책을 발견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당시에도 하드커버본이었던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쨌거나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과 동일하다고 기억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설 외에는 잘 읽지않는 취향인데도 불구하고, 그 때의 나는 왠지 이 책을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막상 읽고보니 술술 읽히는 구석이 있어서 왠지 기분이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2

 저자 서경식씨는 재일교포이며, 아버지가 태어난 해인 1951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고된 삶을 살았고, 최소한의 교육만을 수료하셨다. 아버지와 동일한 나이의 사내들이 무언가를 일구어낸 것들을 보고있자면, 내 아버지도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더라면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을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내심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저자 또한 풍족한 삶은 아니었고, 또한 그의 가계는 옥중생활을 하는 두 형과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나머지 가족들의 고단한 삶으로 인해 가여이 생각되지만, 결국 그는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고 여러 종류의 서적을 만들었으며 강단에도 서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다.

 

3

 미술에 별다른 조예가 없던 저자가, 부모님 사후에 기분전환을 위해서 누이와 떠난 유럽여행에서 여러 미술 작품들을 접하며 느끼게된 생각과 감정들이, 이후 여러 번의 여행으로 이어지고 수없이 많은 미술 작품 관람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여러 번의 여행을 엮다보니 시간 연대 순이 조금 엉킨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히는 내용이다. 나 또한 몇 번의 해외출장 중에 들렀던 몇몇 갤러리 들에서 같은 작품을 보기도 해서인지, 어딘가 같은 시야와 생각을 공유하는 듯한 뿌듯함도 들었다. 물론 저자의 미술작품을 대하는 치열하고도 다채로운 시선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나 또한 머나먼 타지의 냉랭하고 배타적으로 느껴지는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경외와 약간의 위로를 떠올리면은 어딘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4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쓰여진 시대가 20세기 중후반인데다가 일본어를 생활 언어로 사용하는 저자인지라 몇몇 표현 방법은 익숙치 않은 한자 표현이어서 이해가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저자가 처한 환경과 미술사적 배경을 장착한 시선으로, 유럽의 여러 미술 작품들을 간접 체험하고 있노라면 여러가지 생각해볼 만한 구석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읽었다.

 

 ......

 그 그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무언의 격려를 받고 있다, 고 생각이 든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