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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3_시음

샤또 몽페라 2017


Chateau Mont-Perat 2017


 

 첫 와인이 언제,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서너해 이전의 생일 때 그 사람이 챙겨준 작은 생일상의 케익과 치즈 그리고 (아마도 레드 였을)와인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 보니, 아마도 내 첫 와인은 기쁜 날이자 떠올리기엔 조금 서글픈 기억 속의 한 잔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론 통 기억이 없다가 언젠가 회사 동료들과 와인바 야외에서 먹었던 이름 모를 하우스 와인과, 회사에서 연말 선물로 나눠준 레드와 스파클링이 생각이 난다. 품종이라던가 산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채로 입맛에 맞냐 안맞냐는 단순한 기준으로 비추어봐도 와인이란 음료는 참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어느샌가 나는 회사 정보열람실에서 와인 서적을 뒤적이게 되었고, 회사 근처의 와인샵에서 나름 품종별로 와인을 고르게 되었고 나아가서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도 즐겨 보게 되었다. 그 만화 속 주인공이 후에 단골이자 거점이 될 와인바에서 처음으로 와인을 권유받아 마시게 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어릴 때 부지불식 간에 여러 가지 형태로 입에 댄 것을 제외하고)생애 첫 와인을 마시고서 감상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연주로 표현된 그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의 레드 와인인 샤또 몽페라 였는데, 국내에선 중저가에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여러 대형마트를 다녀봐도 이상하게 나와는 연이 닿질 않다가, 언젠가 서울의 와인 성지로 알려진 곳 중 하나인 조양마트에서 결국 구할 수 있었다. 목적은 하나 였다. 만화 속 주인공이 표현한 와인의 특색이 과연 나에게도 느껴질 것인가? 물론 동일한 빈티지가 아니라서 품종 블렌딩 비율이라던가 양조 스타일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지만, 오래 묵어 단단해진 쓸데없는 고집처럼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냉큼 한 병을 집어와 며칠 냉장고에 묵힌 다음-셀러엔 더 이상 자리가 없었다-바로 뽕따서 먹어보았다.

 

짙은 루비색 / 중간 루비색 림
신선한 딸기향

산도 : ★★☆☆☆
탄닌 : ★★★☆☆
당도 : ★☆☆☆☆
알콜 : ★★☆☆☆
바디 : ★★☆☆☆
여운 : ★★★☆☆

프랑스
메를로 100%(비비노)
or 보르도 블렌드(와인 서쳐)
or 메를로 75% / 까베르네 소비뇽 15% / 까베르네 프랑 10%(신세계엘앤비)
(생산자인 despagne 홈페이지에서 테크니컬 시트를 찾을 수 없어서 정확한 블렌딩은 모르겠다)
조양마트 / 2만원 후반

서빙 온도보다 낮은 상태에서 딸기향이 느껴졌고 온도가 조금 높아지자 이상하게 알콜향 외에는 좋은 향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마셨을 때도 딱히 특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온도 조절과 브리딩 등을 잘 못한 것 같은데, 다음에 좀 더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재구매해서 몇년 숙성 시켰다가 적당한 온도에서 다시 먹어보고 싶다.

 

 만화 주인공에게도 생애 첫 와인이었을 샤또 몽페라는 내겐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답을 지금 찾기엔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수긍하고 다음을 기다린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