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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1_읽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
[쥐 3부작] 그 첫번째.

 


#2
군 시절,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 문학의 첫 맛을 봤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하루키 문학에 본격 입문했었다. 시작이 좋았다고나 할까, 첫인상이 좋았던지라 이후 [쥐 3부작] 및 다른 장편소설에도 빠지게되었다. 예전에 샀던 페이퍼백은 언젠가 사라지고 없고, 지금은 얇은 하드커버를 사서 가지고 있다.

 


#3
주인공과 친구 {쥐} 그리고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는 여자. 간소한 등장인물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 신분의 주인공이 고향의 거리에서 겪는 일상을 단촐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일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소설 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이스바 [J's bar]의 매력은, 내가 처음으로 bar 에 출입하게 해주었고, 아마 대부분의 젊은 층 독자들이 bar 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끔 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딱히 일상에 치이지도 않지만, 나 자신을 느슨하게 내려놓고서 맥주를 홀짝거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 그리고 말수적은 {J}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편한 친구 {쥐}. 남자란 무릇 이런 자신만의 공간을 언제나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설 내에서도 많은 공간들-거리, 항구, 테니스장, 수영장 등-이 존재하지만 그 중 [J's bar]는 뭔가 특별하고도 편안함으로 따지자면 최고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4

...여름 내내 나하고 쥐는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25미터 풀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맥주를 퍼마셨고, 제이스 바의 바닥에 5센티미터는 쌓일 만큼의 땅콩 껍질을 버렸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지루한 여름이었다.
제이스 바의 카운터에는 담뱃진 때문에 변색된 판화가 한 장 걸려 있었는데, 나는 따분해서 견딜 수 없을 때면 몇 시간이고 질리지 않고 그 판화를 계속 바라보았다. 마치 로르샤흐 테스트(스위스의 심리학자 로르샤흐가 시작한 성격 검사 방법)에라도 사용될 것 같은 그 도안은, 내가 보기엔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두 마리의 녹색 원숭이가 바람이 빠지기 시작한 두 개의 테니스공을 서로에게 던지고 받는 것 같았다.
내가 바텐더 제이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한참 동안 뚫어지게 그 판화를 바라보더니 듣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다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내가 물어보았다.
"왼쪽 원숭이가 자네고, 오른쪽이 나겠지. 내가 맥주병을 던지면, 자네가 술값을 던져주고."
나는 감탄하며 맥주를 마셨다....

 

 


#5
주인공이 느끼는 일상의 지루함과 주인공의 일관된 삶의 자세. 이런 삶도 있다는 것에 위안받는 느낌이다. 쿨하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