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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청계산

 작년부터 한 번쯤 올라보고 싶었으나 계속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두었던 서울 청계산엘 다녀왔다.

 

대형마트에서 어깨 끈이 고정되는 등산 배낭도 샀다.

무릎, 허리 수술과 족저근막염 이후로 등산을 멀리하면서 산을 오르내리고 오래 걷는 행위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고, 가끔 동네 뒷산인 독침산을 드나들며 언젠가 컨디션이 나아지길 바라며 가고 싶은 산들을 생각해보았다. 인터넷 서칭으로 알게 된 광청종주-수원 광교산과 서울 청계산을 넘나드는-는 너무나 매혹적인 목표로 여겨졌다. 광교산에서 청계산까지 9~10 시간을 걷고 오르내리기엔 내 체중과 허리 무릎이 버티질 못할테니, 감량을 하고 허리와 무릎 근처의 근육을 단련하면서 체력을 올려야 할 듯 싶었다. 하지만 생업과 내 게으름이 복합적인 시너지를 이루어 좀처럼 형편은 나아지질 않는다. 그렇다면 의지도 다질 겸 청계산을 한 번 올라보기로 했다. 광교산은 이미 여러 번 형제봉과 시루봉을 올라보았기에, 청계산 매봉을 한 번 다녀옴으로써 기나긴 종주의 첫 입과 끝 입을 맛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휴일에 시간을 내어 청계산을 다녀오려고 할 때 마다 별의별 핑계가 생기는 바람에 계속 미뤄오다가, 이번에서야 무거운 궁둥짝을 떼어내서 약간은 불안한-체력과 무릎에 대한-멘탈로 청계산 매봉을 다녀왔다.

 

수원에서 수인분당선과 신분당선을 갈아타면서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하였고 2번 출구를 나서면서부터 등산이 시작되었다. 등산로 초입에서 청계산등산로 축소지도를 사진 찍어서 등산 중에 자주 참조하였다. 올라가는 길에는 좀 위험하다 싶은 포인트-흙 비탈과 부서진 계단 등-가 두세 군데 정도 있었다. 그리고 중반 정도부터는 지겨울 정도로 계단 일색이었다. 아마 내려오는 길에 엄청 힘들겠지 생각했다.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돌문바위에서는 남들처럼 세 바퀴를 돌면서 오랜만에 나 자신을 위한 소원이랄지 다짐이랄지를 되뇌었고, 매바위에서는 현기증 때문에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진 못하고 살짝 멀찍이서 멀리 내다보이는 서울의 풍경만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계단을 올라 마침내 목적지인 매봉을 올랐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내 차례가 되자 뒷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남겼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성취감은 생각보다 짧았고 하산에 대한 압박감은 묵직하게 찾아왔다. 정상 뷰를 빠르게 눈에 담고나서 내려오는 길은 눈이 덜 녹은 계단들이 많아서 자주 미끄러질 뻔 했고, 연골이 확실히 소멸되고 말았구나 하는 확신이 들 정도로 무릎에서 뼈와 뼈가 바로 맞닿는 듯한 아픔이 지속적으로 느껴졌다. 무릎을 생각해서 올해 등산은 이걸로 끝내자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침과 점심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시작하여 두시간 반 남짓한 시간을 오르내렸는데 서울의 유명산 답게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청계산을 찾고 있었다. 접근성도 좋고 등산로 안내도 제법 잘 되어 있고 산행 중에 마주치는 경관들과 맑은 공기 등을 생각하면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찾아오기에 아깝지 않은 산이라고 생각한다. 이걸로 광청종주의 처음과 끝은 후일 이어질 수 있을 테지.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