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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여름휴가 시작 전 7월의 어느날, 메가박스 송파 파크하비오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았다.

 중고교시절 친구집 작은 방에 서넛이 옹기종기 모여 만화책으로 즐겨 보았던 슬램덩크.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농구할 땐 강백호의 두 손 자유투와 정우성의 레이업을 연습하곤 했었다. 그 때나 성인이 되어서나 나는 농구에는 소질이 없었고, 농구 뿐만 아니라 손을 써서 하는 운동들에선 영 재미를 볼 수 없었다. 사실 손재주 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각 부분들이 리드미컬하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야하는 부분에선 좀처럼 실력이 좋질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농구는 실제로 몸을 쓰는 것보단 보는걸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만화책을 섭렵한 이후로 슬램덩크는 애니메이션으론 접하질 않았다. 아무래도 만화책 작화로 표현되는 캐릭터의 얼굴이나 몸 등의 음영과 스타일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잘 표현되질 않았던 것 같아서인데, 애니메이션을 건너뛰고 이번에 그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게된 건... 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된 직후 주변 동료들이 대부분 극장에서 보고는 재밌다고 극찬했을 때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한참이 지나 대부분의 극장에서 상영이 종료되고 메가박스 일부에서만 상영중인 지금 굳이 장지역 근처 송파 파크하비오까지 오게된 것은 이 영화-라고 표현하겠다-의 마켓팅을 담당했던 K 와 작은 인연이 생겨서이다. K 로부터 좋은 영화라고 얘길 들어서 시간을 내어 보러온 것이다.

 작은 상영관이었고, 꽉 차진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모였다. 아무래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슬램덩크를 먼저 접하고 팬심으로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이 제법 있다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 몇 장면들에선 격한 탄성이 터지기도 했는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금 몰입이 깨지는 지점이 있었다. 그런 아쉬운 점들을 차치하고는,

 - 쨍하고 선명한 색채 대신에 수묵화 혹은 파스텔 톤의 색채를 채택한 점이 담백하니 좋았고,
 - 만화에선 강백호나 정대만 등의 서사가 풍부했던 것에 비해 송태섭의 서사는 한나와의 접점 외에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영화에선 서사의 중심 축에 놓임으로써 기존의 슬램덩크를 접한 사람들에겐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고,
 - 북산과 산왕의 경기에서 회자되는 강백호와 서태웅의 합작 씬을 영화에서도 구현하므로써 기존 팬들이 이미 예측하고 보았음에도 영화라는 매체에서 좀 더 역동적이고 짜릿하게 해당 씬을 구현하여 추억과 희열을 둘 다 느낄 수 있었다.

 이 후 K 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위와 같은 나의 소회를 밝혔고 K 또한 본인에게도 큰 의미를 준 영화라고 감상을 얘기해주었다. K 는 강백호를, 나는 정대만을 최애로 꼽았다.

 

 

 영화를 보며 세번 정도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밖으로 나와보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다행히 나는 우산 아래에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비오는 거리를 정처없이 걸으며 한낮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