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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서보

 

 K 와의 세 번째 만남을 송리단길 서보에서 가졌다.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느라 도착 시간 계산에 미스가 있어서 조금 늦었는데 다행히도 K 가 서보에 먼저 도착하여 미리 예약을 걸어둔 상태라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웨이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 들어간 카페였지만 의외로 수플레 맛집으로 보였다. 주방 쪽 카우보이 문 아래에서 왠 강아지가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K 가 선물이라며 에그타르트와 휘낭시에(맞나?)를 줘서 고맙다고하곤 넙죽 받았다. 수다를 떨다보니 곧 우리 차례가 다가와서 서보에 입장했다. 족발덮밥과 새우국밥을 하나씩 주문하고 맥주도 주문하였다. ㄱ자로 된 다찌가 있어서 사람들이 둘러앉아있었고 우리도 자리를 잡았따. 음식은 곧 서빙되었고 K 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족발덮밥은 눈치안보고 와구와구 먹으면 좀 더 풍미가 있을 것 같고, 새우국밥은 마약처럼 내 입맛에 잘 맞아서 무심코 후루루룩 먹어댔다. 근데 이상하게 배가 좀 불러와서 맥주를 다 마실 때쯤 밥은 결국 조금씩 남기게 되었다. K 도 맛있다고 했던 것 같다. 사람이 붐비는 터라 오래 있진 못하고 자리를 떴다. 여긴 다음에도 한 번 다시 들리고 싶었다. 거리로 나와선 어디를 가볼까 좀 걸었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고 괜찮아보이는 곳들은 대부분 만석으로 보였다. 우리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악마 같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나도 시원하고 달달한걸 시켜먹을껄 하고 후회되긴 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에스프레소를 먹었던 것 같다. 아무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이 날 서로의 연애관과 결혼관에 대해 조금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여러가지 대화가 오고 갔고 조금 더 상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조금 피곤해져서 (식후엔 조금 지치는 편이다) 뒷 쪽으로 갈수록 내가 대화에 집중했는지 자신이 없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두세 시간이 지나있었던 것 같다.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와 우리는 이 날의 여정을 마무리 했다. K 와 헤어지고 귀가를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K 의 얘기를 잘 들어준 건지, 내 얘기를 거짓 없이 잘 얘기 한건지 등. 나는 생각한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꺼낸 얘기가 그 사람의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또 생각한다. 상대의 얘기에 동조하며 말하는 내 본심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상대를 파악할 수도 있지만 행동과 태도를 통해서도 상대를 파악할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결국 이 날 말로써 상대를 파악하기보단 상대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은 만남이 진행이 되는 듯하여 그 점이 좋았다.

 

 

 K 가 준 빵은 다음날 회사에서 식후 간식으로 맛있게 먹어치웠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