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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_유희

걸어서가는집

 와인을 먹지 않는 날-대체로 먹지만 그래도 간을 쉬어줄 요량으로 건너뛰는 날도 있다-엔 이상하게 맛있는 음식이 땡기곤 하는데, 그럴 때면 와인을 먹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금기 때문에 반사 효과로 소주를 곁들이게 되는 것 같다. 결국은 원래의 목적을 잊어먹는 격인데, 이번이 그랬다.

 

 

 황골 북쪽의 용인시에 속하는 위치에 걸어서가는집, 이라는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일찍 퇴근한 후 찾아가봤다. 주택가 골목길에 뜬금없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나름 동네 주민들의 픽을 받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사장님 한분이 테이블에 앉아 계셨고, 천장에는 작게나마 와인랙에 와인글라스들이 걸려 있어서, 주류반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님은 아직 한 팀도 없었고 나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직 식사 전이라 식사가 될 만한 것과 안줏거리를 하나씩 골라보았다. 해물 야끼소바와 치킨 가라아게를 주문하고 테슬라를 추가했더니, 두 개 메뉴를 다 먹을 수 있겠냐고 사장님이 물어보셨다. 배가 고프다고 말씀드렸더니 혹시 남으면 싸 주시겠다고 한다. 주문을 넣고서 조금 기다리자니 참깨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와 맛있게 튀긴 치킨 가라아게가 먼저 나왔고, 곧 테슬라가 서빙되었다. 시원하게 말아 한 잔 들이켜고서 닭튀김을 몇 조각 호쾌하게 먹어치웠다. 식도와 위가 차가운 술과 따뜻한 음식물로 금새 만족스러워졌다. 해물 야끼소바가 나오고 다급해진 젓가락은 면과 가쓰오부시를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먹기 좋은 모양새를 만드느라 바빠졌다. 작은 앞접시에 면과 해산물 그리고 가쓰오부시를 야무지게 올려 후루 후루룩 하고 몇번 먹어치우다보니 금방 야끼소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술은 많이 곁들이지 못하고 두 접시의 음식들만 흡입하듯이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정통 일본식 음식이었고 꽤나 맛있게 즐겼다. 결국 맥주와 소주를 반 정도 남기고 닭조각 두어개를 까치밥으로 남긴 채 마무리를 하고 귀가했다.

 

 

 건너편 이웃에서 아가의 백일이 있었나보다. 그간 애기울음으로 이웃간 층간소음을 우려했던 탓인지 그에 대한 미안함과 인내를 가져준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아주 탐스럽게 생긴 복숭아 몇 알과 떡을 쇼핑백에 고이 담아 문 앞에 둔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복숭아를 한 알씩 싸놓고 그 중 하나를 깎아서 맛을 보았는데, 너무너무 달콤했다. 행복이라는 침대보에 오랫동안 코를 묻고서 쌔근쌔근 숨을 쉰 것 같은 하루였다.

 

무한, 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