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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 1 책장을 너무 소설로만 꽉꽉 채우는 것이 위화감이 들어서, 일러스트레이션북과 사진집을 일부 골라보았다. 사진집이라고는 대학생때 호기심에 사보았던 손바닥만한 작은 사진집-유진 스미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유진 스미스의 사진집은 왠지 비장하거나 심각하거나 혹은 고상하거나, 이 부류의 감상만 들었을 뿐이다. 차라리 사진집보다는 화집이 좀 더 끌려서 도서관에선 주로 화집을 뒤적거렸던 적도 있었다. 그럼 잘 알지도 못하는 사진집을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골라야 할까? 우선 인터넷부터 여기저기 뒤적거려보았고 요즘 롤리타스러운 감상평으로 유명한 로타 작가의 {girls}와 브루클린녀로 유명한 경인C 작가의 {자취방}을 알게 되었다. 몇몇 사진들을 훑어본 뒤 망설임 없이 두 작가의 사진집을 모두 골라담아 주문했고..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1 고등학생 때 책 대여점에서 빌려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노란색 커버의 책이었고(지금은 흰색 커버), 작가의 배경/성향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보았던 책이다. 노련하고 퇴폐적이지만 식도락에 대해 집요한 면이 있는 작가의 미식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신선하게 마음에 와닿았었다. 간혹 골 때리는 야한 얘기들에 설레이기도 했었더랬지. 좀 정도가 지나치다는 위험신호를 느끼기도 했지만. 2 최근에 카트에 담긴 책들을 일괄 구매할 때 섞여있었던 모양인데, 왜 굳이 [이미 보았지만 큰 감흥은 없었기에 재구매 의사까지는 없었던] 이 책을 다시 구매하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엇때문에 카트에 들어있었던 걸까? 아마도 어떤 계기가 있어서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고, 당시의 노란 색깔 커버와 신선하고 충격적..
나의 서양미술 순례 1 2002년, 혹은 2003년 군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정도 내무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있던 시기였고, 일과 이후에는 무언가 읽을 거리가 없나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던 차에, 누군가가 꽂아둔 이 책을 발견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당시에도 하드커버본이었던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쨌거나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과 동일하다고 기억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설 외에는 잘 읽지않는 취향인데도 불구하고, 그 때의 나는 왠지 이 책을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막상 읽고보니 술술 읽히는 구석이 있어서 왠지 기분이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2 저자 서경식씨는 재일교포이며, 아버지가 태어난 해인 1951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고된 삶을 살았고, 최..
스푸트니크의 연인 1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도서대여점에서 우연히 이 책과 마주쳤었다. 주로 만화를 빌려 보다가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이유리의 [십대들;] 등을 보게 되면서 소설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가던 때로, 뭔가 괜찮은 책이 없을까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끄집어내게 된 것이다. 당시의 느낌은 뭐랄까, 삭막했다. 연한 갈색의 커버에 정체를 알 수 없는(아마 스푸트니크라는 위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겠지) 금속으로 이루어진 물체, 그리고 검은 활자의 [스푸트니크의 연인]. 그 땐 스푸트니크가 뭔지 몰랐던 때라 상당히 기묘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본래의 자리에 책을 꽂아넣었다. 안타까운 이별이지만 그 때 당시엔 전혀 망설임이 없..
너에 관한 꿈을 꾸었었다. 꿈 속에선 모든 일들이 가능하고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던가 윤리적인 가치가 꿈이라는 이유로 이해되지만 또한 그에 대한 개인의 양심이 동요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상 꿈 속에서 너를 만났을 땐 너와 나는 지금보다 좀 더 가까와진 관계였다. 그걸 연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나는 꽤나 노력했었던 것 같다. 또 그만큼 너는 내게 다가왔다가도 잡히지 않는 허상처럼 한 걸음씩 물러났다. 나는 애가 탔다. 대부분의 꿈이란게 그렇듯 일의 앞뒤가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고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어쨌건 그 상황, 그 장면에서 나는 분명 너를 원하고 있었다. 이후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는 매혹을, 나는 담배를 한낮의 뜨거움도 어둔 밤하늘에 자리를 내어주고 모두가 떠나버린 거리 지금은 우리들의 시간 기억하는진 몰라도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바랬던 내일 삶의 고단함조차 이겨내었던 어제를 너는 알 수 있겠지 달, 내게 말해줘 남모르게 키워온 내 안의 바램들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모두가 포기해버린 그 때부터 우리가 찾아해멘 그 꿈을 꿈, 인류가 나아가야할 진화의 첨단 이런 내가 어리석은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묻어버릴 너와 내가 도달해야할 그 곳은 어디쯤일까 달, 너는 너무 매혹적이야 그 자체로도 완전한 꿈이지 동쪽 하늘에선 별똥별이 사선을 그리고 땅에 발붙인 자로서의 어쩔 수 없는 좌절감에 나는 또 담배를 문다 서글픔, 회환, 체념의 이름표를 단 감정들을 너는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걸..
불꽃놀이 이봐요 눈을 떠요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보이나요 당신의 눈을 멀게 할 불꽃놀이 그래요 당신은 지쳤겠죠 분명 촛점없는 눈빛 헝클어진 머리 풀어헤친 단추는 당신 또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거군요 물론 넥타이를 메며 당신 집을 나설 때는 단정한 수트에 영롱한 꿈을 가진 모습였겠죠 아침엔 누구나가 그런 법이니깐 피유우우우웅... 팟! 아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이에요 어서요 어서 내 손을 잡고 따라와요 발돋움하지 않아도 잘 보이는 높은 곳으로 가요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니깐요 오늘 밤은 제발 넥타이를 풀고 있어요 당신 맘을 느슨하게 할 불꽃놀이 축제는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지고 버스며 지하철은 이미 끊긴데다 내일도 어김없이 당신은 출근해야하지만 오늘은 다신 오진 않아 모든 것을 다 비우고 ..
제목없음 보이는 풍경의 삼분의 이가 하늘인 그 강변에서(나는 웃었던 것 같다). 대여섯 번 걸어야 한 번 받음직한 그의 전화번호가 아니더라도 그의 명함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정말로 바쁜 사람이지만, 물론 그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어찌된 심사인지 그를 꼭 이 곳으로 불러내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억지, 부당한 요구. 평판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마음씨까지 좋은 그는 억지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순순히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우리는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강변을 따라 말을 달려왔다. 불러낸건 나인데,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근황을 얘기하고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수줍음을 느끼며 아직 덜자란 말의 갈기만 자꾸 손으로 빗어내었다. 귓가에 웅웅거리는 그의 보이스를 들으며 나도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강변 위로 펼쳐진 광활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