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_11_읽기

(49)
동급생 콘라딘은 아마도 처음부터 그의 마음을 그리 정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나치즘의 진행을 겪으며 그가 기대했던 이상적인 부분과 실제 간의 괴리를 인지하고 서서히 마음을 바꾸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 판단과 결정에는 그의 빛나던 소년시절의 한스와의 우정과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의 경험들이 그를 선의 가치 쪽으로 움직이게끔 무게를 실어주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마지막 처형의 순간에 아마도 콘라딘의 마음은 죽음의 두려움과 비등하게 어떤 성취감과 홀가분함도 느꼈으리라. 무한, 영원.
유럽의 교육 폴란드. 빨치산. 혹독한 추위. 책의 속지 그래픽에서 아득한 냉기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고 심지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도 꺼려지는 것이지만 왜인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전쟁은 일어나곤 한다. 일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일일텐데. 사회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떠난 출장지였던 폴란드 바르샤바에선 간혹 전쟁의 흔적들이 길 이곳저곳에 남아있었지만 내 기억 속의 폴란드는 코 끝 빨간 하얀 피부의 폴란드인들과 어느 일요일 와지엔키 공원의 빨갛고 푸르렀던 장미정원과 호수 가운데에서 멋드러지게 쇼팽을 치던 연주자의 연미복 끝자락으로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다. 폴란드에 가고 싶다. 평화로운 시대에 한껏 흐드러진 마음으로. 무한, 영원.
홀가분한 삶 언젠가 읽었던 미니멀리즘 도서의 연장선상에서 대여한 책이다. 무한, 영원.
호빗 처음부터 톨킨을 보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작으로 꼽는 환타지물인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나는 부러 보지 않았었다. 환타지 소설이나 게임은 무척 즐기고 빠져드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레퍼런스라 할 수 있는 작품들엔 쉬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런 내가 어떤 연유로 호빗을 고르게 된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교보도서관 전자책을 대여하여 호빗을 읽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단숨에 읽어내게 되었다. 불쌍하고 다정한 빌보와 집념어린 난쟁이 우두머리 참나무방패 소린과 그의 난쟁이 동료들 그리고 빌보를 길고 험난한 길로 억지로 이끌어낸 마법사 간달프. 목적이 분명한 모험 속에서 겁이 많고 아둔하지만 때론 용감하고 명석해지는 빌보를 마음 속 깊이 응원하면서 나도 같이 모험의 여..
초기업의 시대, 모나드의 영역, 잇츠캠핑 최근에 읽은 것들. 독점과 반독점법에 대해 관련 판례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인데, 시사경제에 밝지못한 내게 록펠러와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들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와 사실들을 알게해준 고마운 책이다. 완독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점심 산책 시간에 독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 추천으로 읽게되었는데, 작가의 위안부 관련 정도가 심한 발언으로 국내 출판이 멈추어 버린 작품이다. 하지만 꽤 흥미로운 주제와 작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중세계와 신을 메인 주제로 다루고있지만 서사와 인물 묘사에 있어서 신선함을 많이 느꼈다. 최근의 연휴기간에 차량 틴팅을 했는데, 결과물을 보고서 문득 차박이 하고 싶어졌다. 유튜브 플랫폼에서 이런저런 차박 영상을 찾아보다가, 회사 도서관에서 아예 노지캠핑을 다루는 ..
노인과 바다 바다로 떠나 몇날 며칠을 고생하며 거대한 물고기를 잡은 산티아고 노인과, 그런 노인을 학수고대하며 마침내 돌아온 노인이 겪었을 법한 고생을 생생히 느끼며 노인을 위해 엉엉 울어주었던 소년 마놀린. 마놀린이 노인을 생각하며 엉엉 울었던 부분에선 나도 울고 말았다. 과연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렇게 울어줄 수 있을까? 나 또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누군가를 위해 내 뜨거운 심장 한켠을 내어주고 그 누군가가 걱정되어 체면 불구하고 엉엉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출근 버스 안에서 나는 읽던 책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 의 몇몇 서평들과는-인간을 대표하는 노인의 견고한 의지로 주로 설명되는- 전혀 연관이 없는 얘기지만, 솔직한 감상이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산티아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단편소설 장편소설 외에, 여행기라던가 수필 등도 활발하게-혹은 메인 작업인 장편소설의 휴식기 등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작가인데, 어느 순간부터 서점에 가보면 그러한 단편소설집 및 에세이집이 조금씩 편집되어 형태를 바꾸어가며 조금 지나치다 생각될 정도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가 나왔을 땐, 본능적으로 이건 진짜다, 라는 판단이 들어 일단 사서 책장에 모셔두었다. 완독한 후 드는 생각은, 과연 이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본업이 문학 쪽은 아니었으나 야구 구장에서 베트가 공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를 듣고서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래, 그 작풍이나 마음가짐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고 진화하였지만, 수십년의 작가 생활을 통해 일관되게..
1Q84 작년이었나 제작년이었나. 이창동 감독의 [버닝] 을 영화관에서 보고선, 원작 소설인 [헛간을 태우다] 를 보고 싶어서 단편소설집 [반딧불이] 를 읽었던 게 마지막으로 보았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이었다. 한참 마음이 혼란하던 시절이었기에 좀처럼 책을 볼 수 없었고 애써 보려고도 하질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 생각난듯 온라인 서점에서 몇 권씩 책을 사모으곤 했다. 책을 살 땐 당시의 트렌디한 경향을 쫓아 베스트셀러를 몇 권 장바구니에 담고, 이어 스테디셀러 내지는 명작 중에서 몇 권을 고른 후,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 중 여태 읽지 못한 것 들이나 최신작을 골라서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이 내 도서 쇼핑의 패턴이었다. 이른바 내 최애 작가 중 한 분이기에, 내 책장에 아직 자리잡지 못한 작..